독서

쿨하게 사과하라

모든 생각 2021. 12. 27. 21:00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2011년에 나온 이 책도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내가 사과할 일이 있어서 읽은 건 아니다. 단순히 다른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책이다.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너무나 뻔한 이야기이다. 이 책 제목은 설득력이 없었다. 보나 마나 뻔한 이야기 하겠지.. 이러한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물론 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과를 과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심지어 저자는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이다.

 

 40년 넘는 경력을 자랑하는 미국 주립대학 종양외과장인 다스 굽타(Das Gupta)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환자의 아홉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내야 할 조직을 여덟 번째에서 떼어낸 것이다. 환자와 가족이 알면 거품 물고 기겁할만한 일이다. 명백한 의료사고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과를 구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환자가 병원 상대로 소송을 걸 경우 수억에서 수십억의 손해배상금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의료사고를 인정하는 순간 40년 넘는 경력은 날아가고 여론은 그 병원을 질타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병원 측 변호사가 이해할 수 없을만한 짓을 한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과를 구한 것이다. "저는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환자분께 큰 해를 끼쳤습니다."  그 환자와 피해 가족들은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을 준비했지만 그 사과를 듣고 의사를 고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8천만 원의 배상금으로 병원과 합의를 봤다. 피해자 부부는 의사의 진심 어린 사과가 놀랍게도 분노를 한순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훈훈한 이야기가 특별한 것일까? 아니면 진짜 사과에는 과학적인 힘이 숨어있을까? 이 의문을 가진채 조금 비판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한 사과는 뻔뻔함 끝에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실제로 1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많은 매체들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저마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실수와 잘못을 저 질렸을 때 사과를 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뻔뻔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과를 받고 싶어 하는 것보다 사과를 통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공격적으로 사람을 밀어붙이고 그 끝에 받아낸 사과는 조롱거리가 되고 빠르게 잊히며 잘못과 실수만 부각될 뿐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 말하는 사과는 패자의 언어가 아니라 승자의 언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존경과 신뢰를 받기 위해서 갖춰야 할 덕목인 리더의 언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실수나 잘못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과의 기술은 성숙한 자아를 가진 리더만의 언어라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의 맏딸 박근혜가 나를 찾아왔다.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만이었다.
그녀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2004년 8월 12일 김대중 도서관에서 박 대표를 맞았다.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박 대표의 손을 잡았다.
박 대표는 뜻밖에 아버지 일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 드립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하여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
-김대중 자서전1-

 

 이 책은 사과의 기술도 알려주며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역사적 문제도 다루고 있다. 과연 과거에 하지 못한 사과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인가?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과 일본이지만 너무나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미 우리가 모두 아는 것처럼 독일은 용서를 구했고 일본은 유감을 표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많이 해왔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과연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의 잘못을 현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짊어져야 하는가?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와 나치가 했지만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무릎을 꿇고 홀로코스트와 전쟁으로 고통받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사죄했다.

 

 2007년 4월 16일 월요일 아침,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국인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일이 있었다. 당시 <타임>은 '한국인의 집단적인 죄의식'이라는 기사를 통해 전 국민이 애도한 사실을 알렀다. 심지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3번 이상 미국 측에 메시지를 보냈고 미국 대사는 32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32일간 단식을 했다. 이 사건은 왜 대한민국 국민들이 죄의식을 가지고 도의적 책임을 다했을까? 이와 같이 가해자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사과는 적절한가? 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자신이 직접 저지르지 않은 조상이나 같은 민족의 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란 독립된 존재라기보다는 민족, 국가, 부모, 형제 등 다양하고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라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즉, 우리가 월드컵에 웃고 우는 것도 조승희가 저지른 범죄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우리가 한국이라는 '이야기'의 일부라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입장에 따르면, 조상의 잘못에 대한 죄의식이나 책임은 현시대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한다.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불합리하기도 하다. 다른 이들이 대신하는 사과는 대리사과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 내 나라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보상하고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진정 내 나라에 충성하고 애국하는 방법일 수도 있단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의 많은 부분 공감을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2002년 경선을 위해 2억 4500만원이라는 불법 선거자금을 썼다고 '양심 고백'을 한 정치인이 있었다. 이것은 범죄이지만 이 책에서는 '정치자금 양심고백을 한 최초의 정치인'이라는 평을 했다. 그 이유는 다른 정치인들은 저지른 불법 사안을 실토하지 않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 정치인을 통해 정치 선진화를 이루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으로 말했다. 실제로 이 정치인은 1심 벌금형이었지만 선고유예 판결이라는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고 치켜세우는 듯한 말을 한다. 양심고백을 하든 안 하든 감추던 그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정치인이 진정으로 사죄하듯 범죄에 대한 처벌은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사과로 범죄를 관대하게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뻔한 이야기를 논문과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실험, 설문 그리고 사례를 통해 사과의 기술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사과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례, 사과를 했지만 역효과가 난 사례, 사과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어정쩡한 사과가 된 사례 등등을 보면서 나도 앞으로 사과할 일이 있다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어떻게 사과하는지에 대해 리스트로 남기고,,, 훗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찾아봐야겠다,,,

 

사과의 내용

  • 유감: 사과를 할 때에는 상대방에게 불편, 고통, 피해를 주어 미안하다는 표현을 반드시 해야 한다. "피해드린 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 책임: 진정한 사과는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제 잘못(또는 책임, 실수)입니다."
  • 치유, 보상: 잘못은 되돌 일수 없지만 보상은 내놓을 수 있다.

사과의 육하원칙

  1.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되, 잘못 오해된 부분은 해명한다. 하지만 사과문의 25퍼센트 내외에서 그쳐야 한다. 핑계가 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2. 공개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 여론이 악화된 후의 사과는 아예 안 한 것보다 나을 수는 있지만 효과는 떨어질 것이다. 사과의 타이밍을 늦춰야 할 경우 왜 늦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하라.
  3. 어떤 매체로 사과를 할 것인지 정하라. 유튜브가 될 수 있고 이메일이 될 수 있다.
  4. 대신 사과하게 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사과하는 것이 좋다.
  5. 마지못해 사과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과하라. 실수가 있었던 거 같다, 만약 그랬다면 죄송하다. 등 수동태와 조건문은 쓰지 말자.
  6.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사과하는 측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단 걸 보여줘라.

사과하는 것도 어렵다... 그냥 미안할 짓 하지 말자,,,

 

난 당신이 미안하다고 말해주길 원하는 게 아녜요.
당신이 미안하다고 느끼는 것을 원하지
-<뉴요커> 2008.12.15 바바라 스몰러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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