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
피터 프로노보스트, 에릭 보어 <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
이 제목을 처음 보면 드는 생각은 존스홉킨스 병원이 뭐길래였다. 미국에 있는 병원으로 노벨상 받는 의학자들이 많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원이다. 이 책의 저자인 피터 프로노보스트도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마취과 교수이고 그는 병원을 변화시킨 과정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마디로 썰이다.)
2001년 킹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렐의 아들 조시는 욕조에서 2도 화상을 입으며 존스 홉킨스 병원으로 입원하게 된다. 이 하나의 이야기로 존스홉킨스 혹은 미국 전역에 퍼지고 있는 보건의료의 현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검사상 채취한 혈액에서 세균 감염이 되었고 그 도중에 의사의 고집으로 병을 키워냈다. 결국 18개월 된 아이 조시는 가족의 곁을 떠났다. 존스홉킨스 병원은 동네 병원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최고 의료진들이 가득했지만 아이를 살릴 수 없었다. 조시의 죽음은 보건의료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실력이 없는 의사가 아닌 의학적 실수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의학적 실수는 의사소통, 팀워크 그리고 오랫동안 박혀온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지금에서야 당연하다 생각한 환자의 안전성이 이때 당시에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된 근거에 불가했다는 것이다. 수술을 하기 전에 손을 씻거나 수술 부위를 표시하거나 수술복을 입는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 매체에서 흔히 볼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보건의료 환경을 바꾸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변화를 이끈 사람은 이 책의 저자인 프로노보스트이다.
프로노보스트 또한 의학적 실수로 부모를 잃고 환자 안전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존스홉킨스의 의사이다. 아버지의 진단이 림프종에서 백혈병으로 바뀌었고 그 사이에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아버지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의사의 실력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사의 실수는 절대로 병원에서 꺼내면 안되는 말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아직 의료의 기술로 모든 것을 명확하게 진단 내릴 수 없고 의사도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는 당연하다. 하지만 의사의 실수는 곧 환자의 죽음이다. 너무 불합리하고 불안해 보이지만 우린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건강을 책임지게 할 순 없지 않은가? (요즘은 '실수'라 하지않고 '결함'이라 한다.)
병원과 항공업계의 공통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남에게 나의 목숨, 생명을 맡겨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이점은 비행기 사고와 같은 항공 문제는 원인을 추적하기 쉽고 그만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에 타는 사람들은 분명 건강한 사람들일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도 위계질서는 존재한다. 기장은 비행기 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이륙하기 전 비행의 결함을 발견한 부기장이 기장에게 이를 보고했지만 무시하여 사고로 이어진 사건이 있었다. 이런 항공 문화는 시행착오 끝에 현재에는 안정을 잡은 듯하다. 그러나 병원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한 환자만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수술 과정 중 발생한 합병증은 그 원인을 추적하기 힘들다. 그만큼 환자 안전에 대한 예방이 중요하다.
프로노보스트는 환자의 안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병원에서 꼭 해야하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는 문제이다. 의사들은 바쁘다. 그런 리스트를 봐가면서 일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이런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안정 리스트를 지키는 병원이나 의사는 극히 드물었다. 왜 지킬 수 없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걸 지키도록 하는 방법을 구상하며 변화해 나갔고 실제로 의료 사고를 줄이는 결과를 입증해냈다. 그 입증된 결과는 정치권에서 정책화되었고 전 세계에서 쓸 수 있도록 공유되었다. 실제로 2008년 <타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큰 변화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의사소통의 부재였다. 존스홉킨스 수술실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서로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상태에서는 협력을 기대할 수 없었고 당시 간호사가 의사한테 질문과 지적을 하는 분위기는 상상할수 없었다. 하지만 환자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잘 아는 것은 보호자와 간호사라고 할 수 있다. 의사는 많은 환자의 진료와 데이터에 기대며 진료를 한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숫자와 데이터로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도 사람이고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실수 인정하는 것이 당시 의사의 가장 큰 부재라고 할 수 있었다. 간호사가 의사에게 잘못된 부분과 수정사항을 말하면 뭘 아냐는 듯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 문화는 수술실에서도 이어지고 그것은 환자의 위험으로 빠질 수 있다. 문화를 바꾸기에는 큰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서로의 목표와 목적이 같았다. 그것은 환자의 안전이다. 불같이 화를 내는 의사도 환자가 건강해지는 문제에서는 동일할 것이다. 이것에 대한 생각이 같았기 때문에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병원의 이사진이나 행정직들이 이 사태에 대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모든 병원에 적용이 되고 더욱 안전한 병원이 되는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책을 마친 후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보았다.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있고 의료 현장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기적 교육도 행해지고 있다. 2010년도 환자안전-교육 프로그램 도입 필요성이라는 기사가 나온 거보면 환자 안전에 대한 생각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각종 병원들의 미션과 비전에 환자 중심 치료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야기와 감동이 없다면 맥락은 사라지고 만다. 단어의 나열만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