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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읽고 내맘대로 생각하기

모든 생각 2025. 1. 28. 13:26

필자는 서울로 상경한 지 4년째이다. 서울에는 좋은 인프라가 있다. 문화, 먹거리, 볼거리, 구경거리 등등이 넘쳐난다. 그러기에 나에게 서울살이는 어렵지 않았고 신기한 거 투성이었다. 나는 서울사람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나름 적응이 쉬웠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이 보기엔 나는 그들에게 이방인이었을까? 나는 왜 이방인으로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방인이 느끼는 심정과 외로움이 궁금하다. 단순한 궁금증으로 이번에는 이 문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소설책이 얇았다. 그것도 선택의 이유였다. 하지만 몰랐다. 얇다는 것은 그만큼 표현의 압축, 스토리의 모호성이 담겨있다는 것을...

주인공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성가시고 귀찮아 한다. 여기서 주인공의 사연이 궁금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장례식 이후에도 휴양지를 간다던지, 파티를 하거나, 누군가의 위로를 대화의 부분으로만 생각하는 주인공의 의중이 궁금했다. 분명 어머니랑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러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니 주인공은 모든 것에 무심한 사람이었다. 정말 답답할 정도였다. 살짝 소시오패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 중간에는 이러한 주인공이 무섭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과 소통이 잘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일방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러한 관계조차도 중요시 여기지 않는 듯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이어간다. 이러한 무심한 사람이 왜 이런 관계를 이어가는 것일까? 또, 왜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이방인 같은 무심한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사건은 질 나쁜(?) 친구를 만나면서 생기는데, 친구 레몽이라는 인물에게 생기는 복잡한 관계에 주인공이 끼어들어간다. 그러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주인공은 총 5발의 총을 쏜 것. 왜 누워있는, 충분히 제압이 된 상대방에게 4발을 더 쏜 것일까? 본인과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지 않은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필자는 모든 행동과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설 1부는 심오한 주인공에 대한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했고 소설의 2부는 이러한 주인공의 이해를 바탕으로 재판 상황으로 이야기가 꾸며졌다. 주인공은 적극적인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굉장히 답답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점차 나는 이해가 되었다. 주인공은 법적 메커니즘이 아닌 그저 솔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변호사는 그저 그 사건을 축소, 검사는 그 사건을 크게, 판사는 그 사건을 종합적으로 왜곡하며 사건을 이어 붙인다. 여기서 주인공의 생각,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법원에서 짜고 치는 연극 같다는 표현을 쓴다. 마지막으로 끼워 맞추기 식 정의가 이루어진다. 재판은 주인공이 어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다는 점, 장례식에 눈문을 보이지 않는 점, 장례 이후에도 여기저기 놀았다는 점을 들면서 사건을 왜곡하며 정의에 끼워 맞췄다. 결국 주인공은 사형을 당한다.

이방인이라는 제목은 내가 생각할땐, 이런 주인공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지어진 게 아닐까? 이방인은 외지에서 온 사람으로 내지인과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옳지 못하다고 치부되기 쉽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사회적인 인식 측면에서 모든 면이 이방인 었다. 그렇다고 이방인이 죄가 될까? 이방인은 통념적인 것들을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결과, 사법부 체계에서는 그에게 죄를 심어주었다. 나는 이 소설이 사법부의 체계, 메커니즘에 대한 사회비판, 조롱을 담았다고도 생각한다. 주인공은 이러한 사회 통념을 끝까지 따르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인공은 이방인으로 취급받고 사형을 당한다. 마지막 주인공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와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소설을 마쳤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문장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구경꾼은 사회 통념을 까르는 이들이고, 함성은 끝까지 자신의 소신과 진실했던 이에게 보내는 하나의 찬사이자 존경이 아닐까 한다. 이문학 역시 나에게 어려웠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너무나도 적절했다고 본다.

나는 주인공에게 증오가 아닌 함성을 보내 진실과 소신을 보이는 이에게 찬사를 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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